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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풍경

태어나는풍경_01,02,03_150x100cm, Digital pigme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날 밤에 이 나라가 끔찍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경험을 했다. 나와 가족은 이 뻔한 결론이 있는 사건이 곧 정리될 줄 알았다. 그렇지만 나의 기대와 다르게 시간은 흘러갔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헌법을 필사하는 운동이 번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시민들이 헌법을 필사함으로써, 국민이 헌법의 주인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강조하며, 비폭력 저항의 형식으로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는 운동이었다.

나는 저항과 기억의 정치적 상징행위인 이 운동에 작가로서 참여하기 위해 헌법 전문을 읽는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남기기로했다.

헌법 전문을 읽는 행위에는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여러번 읽어야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에 담긴 해방이후의 이 나라의 역사였다.

시민의 희생을 통해 만들어진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다시 독재정치로 돌아가지 못하게 여러 차례 개정된 헌법 조문을 읽으며 죽은 자가 헌법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쓸모없다고 버려진 흰 비닐을 주워 씻고, 말리기 시작했다.

얼룩진 흔적, 찢어진 자국, 곰팡이 냄새 속에서 그것들을 씻고 말리며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 만들어낸 헌법이 지켜지는 나라가 되길 빌었다.

영상을 여러 번 반복해서 녹화하는 동안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지연되고 있었고, 재판관들의 의견이 갈리면서 기각될 확율이 높아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날은 헌법 전문을 한 시간가량 낭독한 후 찢어서 공중에 흩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영상을 녹화하는 동안 헌법재판소에서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이 되었다. 나는 다시 영상을 찍었다.

대한민국 헌법을 읽으며 민주주의를 위해 죽은 그들을 기억하며,

헌법 제 1장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025년 5월 이진경

 

 

2025년 5월

<태어나는 풍경 01>  Digital Pigment Print, 150x100cm, 2025

<태어나는 풍경 02>  Digital Pigment Print, 150x100cm, 2025

<태어나는 풍경 03>  Digital Pigment Print, 150x100cm, 2025

<태어나는 풍경 04>  Digital Pigment Print, 90x130cm,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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